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아르센 뤼팽 씨리즈이다. 이 씨리즈를 처음 접한건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도서관에서 씨리즈 전집 20권을 빌려 읽었고, 그때 뤼팽 씨리즈에 매료되어 언젠가 꼭 20권 전부를 소장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천천히 한권씩 사서 모으는 중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813의 비밀(원제는 "813")은 그 씨리즈 중 4번째 소설이다.

뤼팽씨리즈를 제대로 읽어보기 전까지는 아주 단편적으로만 뤼팽을 접했었다. 그런만큼 단순히 "괴도신사"라는 이미지 이외에는 별다른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뤼팽씨리즈를 읽으면서 뤼팽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그는 단순한 "괴도신사" 외에 프랑스인 다운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애국자이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위험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로맨티스트였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인물에게 빠져드는 것은 쉬웠다.

813은 책 두께부터가 다른 씨리즈들과는 확연히 차이 날 정도로 양이 많다. "기암성" 이후 그 소식이 두절되 죽은 것이 아니냐는 것으로 알려졌던 뤼팽이 4년만에 다시 나타나서 모험을 하게 된다. 이번 모험은 1차 세계대전을 2년 앞둔 시점으로 설정되어있으며 당시의 영국-프랑스-독일이라는 서구열강들의 식민지 이권 다툼 등의 정세가 하나의 소재가 된 작품이다. 

보통 이처럼 사실에 허구를 섞는 소설의 경우 그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떻게 잘 조화하는가가 독자들이 소설의 결말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813은 사실에 허구를 도입하지만 허구는 허구에 머무르고 실재하는 사실은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 깔끔함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역자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모리스 르블랑은 허구를 허구의 테두리 안으로 되돌리고 역사적 실재는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 창작의 묘를 발휘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당대의 현실을 떠나지 않았던 아르센 뤼팽 씨리즈..... 이처럼 분명한 역사적 실재와 황당무계한 허구를 절묘하게 조합하되, 그 각각의 한계를 존중했다는 것도, 수많은 당시 대중의 호응과 사랑을 받았던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813도 기암성에 이어 그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기 보다는 뤼팽의 쓸쓸하고 괴뇌하는 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새로운 모험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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